벗어날 수 없는 회사 무능을 낳는다

베블런의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가난한 노동 계층일수록 보수 성향일 가능성이 높다는 흥미로운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가난하고 힘든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현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진보적인 성향일 것이라는 보통의 생각과는 정 반대입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저소득계층은 하루하루가 힘든 상황이어서 현재 구조적 문제를 고민할 겨를이 없다는게 근거입니다. 삶이 힘들수록 생존을 위해 현재의 삶에 모든 에너지를 소비해야하기 때문에 오히려 변화를 피하는 것입니다. 사회 계층의 모순을 설명하는 이 이론을 개인의 삶에서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가장도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거나 더 나은 인생을 위해 변화를 고민하기보단, 현재의 삶을 유지하는데 집중합니다.

직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버티고 보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다른 삶을 고민하거나 새로운 변화를 계획할 정신적 여유가 없습니다. 가끔 힘든 직장 생활에 회의가 들거나 미래를 고민하며 변화를 꿈꾸기도 하지만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의 입장에서 새로운 모험은 쉽지 않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되면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삶조차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많은 직장인들이 새로운 인생을 막연히 동경할 뿐 차라리 이런 고민으로 시간을 소비하느니 잠이나 더 자자라는 생각에 빠져있습니다.

이렇게 무기력한 직장인의 삶은 결국 퇴직을 앞두고 무능해진 자신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영원할것만 같았던 직장생활은 언젠가 끝납니다. 100세를 살게될 것이라고 예견하는 현재 50대 초반 퇴직을 하고나면 그만큼을 더 살아야하는데 20~30년직장 생활로 남은 50년동안 살아갈 돈을 충분히 마련할 수 없다면 퇴직 이후에도 일을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늦은 나이에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가 쉽진 않습니다.

바쁘게 직장생활을 할 때쯤 고교 동창 모임에 참석하게 되엇는데, 보통 친구들은 진출 분야가 모두 비슷하고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는 것도 별반 다를게 없었습니다. 그 중 어릴적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직장을 그만두고 동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해 연간 수억원의 수입을 거둔다는 친구의 자랑부터 스타트업 기업을 창업하고는 추자자를 못찾아 어려움을 겪는다고 고민하며 그들의 경험과 사는 이야기는 정말 다양했습니다.

세상에는 회사를 다니는일 말고도 많은 직업과 다양한 비지니스가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한동안 잊고 살았던것 같습니다. 그저 직장에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해왔던 스스로가 비참해지고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다니며 스스로 뿌듯해왔지만 친구들의 새로운 세계를 만나니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고 이제는 그것이 실력이되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더 큰 꿈을 꾸며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친구의 모습과 나를 비교하자면 나는 정말 한참 별볼일 없는 삶을 사는것만 같았습니다.

중학교 시절 말썽쟁이였던 친구는 고교를 졸업하고 휴대폰 대리점 커피전문점을 말아먹었지만, 몇 년전부터 고깃집을 창업해 돈 버는 재미가 쏠쏠해졌고 이제는 분점을 늘릴 계획이라며 자랑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던 그 친구를 당시에 만났더라면 별볼일 없는 인생을 살게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별볼일 없는 인생을 살고있는건 바로 제 자신이었습니다. 지난 10년간 먹고살기를 고민하며 다양한 경험을 축적한 그 친구가 이세상에 독립적으로 단단하게 자리잡은 바위 같다면 저는 보기 좋은 건물에 끼어있는 작은 돌멩이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에게 회사라는 배경을 털어내면 혼자서 먹고살 경쟁력은 얼마나될까요? 모임을 끝내고 내내 이런 생각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월급은 당신이 직장 생활을 포기한 다른 인생의 대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월급이 노력 및 재능을 발휘하여 회사에 기여한 바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는 나의 삶 시간과 인생을 바친 대가라는 의미입니다. 좋은 직장인이라면 맡은 일에서 더 많은 성과를 내고 당당히 대접받아야한다고 생각했던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이말에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고작 자신의 시간을 회사에 바치고 인생을 저당잡혀 월급에 위안받는 불행한 직장인이라고 삶을 자조하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10여년이 넘는 직장생활동안 이 말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아도 대충 의미는 이해가 됩니다. 직장인으로서 삶은 스스로 인생을 계획하고 주체적으로 기회를 만들기보단 그 저 현재의 삶을 관성적으로 계속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 생활이 길어질수록포기해야할 것들은 점점 늘어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용기 및 능력은 점점 줄어듭니다. 그러니 점점 더 직장생황에 얽매여 다른 인생을 꿈꾸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더욱이 직장 생활의 피로로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는 데 무기력해졌거나 새로운 정보 및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살피는 것마저 차단해왔다면 퇴직 후에도 새로운 일을 찾아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유능하고 인정받았던 선배 중 퇴직 후 세상물정에 어두워 적극적으로 새로운 삶을시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유능한 직장인이 회사를 떠나고 하루 아침에 무능한 사람으로 전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삶도 이런 구조에 점점 갇히고 있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월급에 의존하는 경제활동으로는 부자는 커녕 풍요로운 노후도 불안하다는 판단을 하고도 딱히 변화를 모색하거나 새로운 준비를 시작하기 어렵습니다. 이 나이에 할 수 있는게 뭐 있어야지, 어덯게든 회사에 좀더 붙어 있어야지라고 말을 하는 퇴직을 앞둔 50대 선배님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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